2026 · 04 · 07  —  육아

소크라테스에게
육아를 물었다

나는 가끔 내가 더 깊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, 하고 생각한다. 더 넓게 보고, 더 천천히 생각하고, 아이에게 더 좋은 말을 건네줄 수 있는 사람.

그 바람이 검색으로 이어졌다. 어떻게 하면 아이에게 더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. 어떻게 하면 판단 없이 아이 곁에 있을 수 있을까.

그렇게 칸밍고를 알게 됐다.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도록 이끄는 AI 튜터. 답을 주지 않고 질문으로 안내하는 방식. 그게 소크라테스식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.

한국에서는 쓸 수 없었다.

그래서 나는 다른 방법을 찾았다. GPT를 열고, 이름을 붙였다. 소크라테스. 내가 육아하며 막막할 때,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를 때, 그에게 물었다.

"오늘 아이가 친구한테 상처받은 것 같아요. 뭐라고 말해줘야 할까요?"

소크라테스는 답을 주지 않았다. 대신 물었다. 아이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뭘 것 같냐고. 내가 어릴 때 그런 순간 어떤 말이 필요했냐고.

나는 그 질문 앞에서 한참 멈췄다.

그게 Qucollie의 시작이었다. 내가 소크라테스에게 받은 것을 — 판단 없이 기다려주는 질문을 — 아이에게도 건네줄 수 있다면 어떨까. 매일 하나씩.

나는 철학자가 아니다. 깊은 통찰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. 그냥 더 좋은 질문을 하고 싶었던 엄마였다. 그 마음이, 여기까지 왔다.